동원화랑과 개관 40주년 기념전에 부쳐
동원화랑이 지난 1997년 개관 15주년을 맞이하며 소식지 『참새미』를 창간하고 기획 대담을 마련한 자리에서 대구 화단의 발전 문제를 논했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40주년을 기념하게 되었다. 그동안 지역 유수의 화랑으로서 연륜을 더하며 미술 문화 보급의 역할뿐만 아니라 전국에 대구미술의 우수성을 알리는 일에 누구보다 앞장서 힘써 왔던 점은 사계 전반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듣건대 화랑을 둘러싼 연속된 불경기 속에서 온갖 역경을 겪으면서도 꿋꿋이 오늘날까지 미술애호가들과 지역 미술 발전을 위해 전시회를 이어온 정신과 뜻은 높이 사지 않을 수 없다.동원화랑이 속해 있는 봉산동 문화거리의 다른 화랑들도 마찬가지지만 지난 십수 년간 불황을 버텨오고 있는 사정을 알면 사실 어떤 치하를 보내도 모자랄 것이다. 지금도 ‘문화의 거리’라는 명목이 간신히 유지되고 있는 것은 오롯이 몇몇 화랑의 헌신 덕분이며 그들의 역할과 존재가 어떤 문화적 가치와 의미를 지니는지는 언급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알고도 남을 만하다.그중에서도 항상 출입이 자유로운 동원화랑의 경우 언제라도 상설전처럼 볼 만한 그림들을 걸어두고 관객을 맞고 있어 들리기 좋은 곳이다. 전시 작품 중에는 지역 작가들의 비중이 높아 그 또한의미가 크다고 평소에 생각해 왔다. 특히 동원화랑은 지역 작가들과 시민들에게 문턱을 낮춰 누구나 가까이서 친근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관객을 유도했고 수준 높은 기획전을 통해 안목을높여 주었다.동원화랑이 해 온 중요한 역할 중 하나가 우리 근대 미술을 조명하는 일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점이다. 지역 근대 작가들의 작품을 아끼고 소중히 다루어서 미술사적 업적을 기리는 데 언제나 큰도움을 주고 있다. 지난 몇 차례 역사적인 전시회 때마다 매번 귀중한 작품을 출품하거나 소장자와 연결해 대여해 주는 일 때문에 기획자들이 큰 도움을 받고 있다.
한 해 1970년대 손일봉 선생의<금오산> 풍경화를 빌리러 간 일은 잊을 수 없다. 소장자가 내실 깊숙이 보관하며 아끼는 작품을판매자인 동원화랑의 부탁으로 어렵게 내주어서 공식적인 전시 공간에서 처음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가끔 생각날 만큼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죽농 선생의 글씨와 사군자는 흔하게 보았어도 그의 초기 산수화를 최초로 대한 것도 동원화랑 소장품을 통해서였고 그 이후로 가끔 근대미술사 기획전에서 만나곤 하는 작품이다.
동원화랑은 여러 면에서 마치 미술관을 운영하듯 작품을 찾고 수집하고 등록시키려고 애쓴다. 그래서 종종 이름만 들었지 실물을 보지 못했던 근대작가의 작품을 찾아내 확보함으로써 역사적으로 필요한 작품 목록을 채워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중요하다고 판단하면 당장 소장까지는 못하더라도 어떻게 하든 작품의 관련 정보를 확보해 놓았다가 뒤에 자료로 제시해 줌으로써 대구 근대미술사를 구축하는 데 긴요한 역할도 해주고 있다. 이제 동원화랑의 활동과 역사는 지역 미술사의중요한 한 페이지가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에 준비하고 있는 40주년 기념 전시에도 중요하고 귀중한 작품들이 여럿이 눈에 띈다. 그 가운데 김용성 작가의 작품이 있어 반가웠는데 1960년대까지 지역에서 미술계를 위해 솔선수범한행적들을 곳곳에서 발견되는 작가나 정작 그의 예술 세계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자료가 전하지않았다. 근대의 작고 작가 회고전을 주최하는 등 화단에 대한 봉사에 항상 그가 나섰지만 그의 유작은 <빨래터>라는 작품과 또 한 점 정도가 지금까지는 전부였다. 추상미술의 선구적인 실천에앞장섰던 이복 작가의 한 점도 워낙 유작이 적은 경우라 역시 귀한 자료로 여겨진다. 이런 식으로지역 근대미술인들의 작품들이 돋보이는 전시회이다.
물론 이번 전시가 지역 근대미술 분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동원화랑 소장품의 수집 폭을 증명해줄 다양한 작품들이 나올 것이다. 거기에는 운보 김기창의 1950년 작인 봄 풍경 스케치를 비롯해최덕휴(?) 작으로 추정되는 유화 ‘파리의 거리 풍경’ 그리고 대구와 인연이 없지 않은 박성환의1962년 작 소품 등과 한국 근대미술의 중요 작가 작품들도 함께 전시될 전망이다. 희소성뿐만 아니라 이동훈의 개성이 잘 드러나는 전형적인 풍경화 한 점처럼 대가의 빼어난 대표적인 작품들도포함돼 보는 즐거움을 더할 것이다.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빼놓지 못할 작가들의 작품들이 골고루출품되므로 누구라도 반겨할 만한 전시다. 혹 작품 중에는 작가의 귀속 문제가 명확하지 않거나 미확인 상태의 작품이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물론 나타날 수 있으리라 짐작된다. 그럴 경우라도함께 연구하고 풀어나가야 할 과제로 삼는다면 그 또한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모쪼록 동시대 작가들과 시민 관객들 사이의 예술적 가교 역할도 충실히 하면서 앞으로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한다. 이번 개관 40주년 기념 전시회가 성황을 이루기를 희망하며 전시에 축하와 감사드린다.
2022.3.31.
김영동(미술평론가)
봄비 같은 동원화랑
동원화랑 손동환 관장은 봄비 같다.
눈 녹은 산에 오는 봄이 개여울 물소리에서 시작하는지,잎보다 먼저 서둘러 오는 꽃잎 속에서 시작하는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겨울 지나 갑자기 눈 앞이 환해지면 그동안 어디서 봄이 기다려 왔는지도 모른다. 그냥 봄은 오고, 명주 옷고름 같은 날짜들은 언제 봄이 가고 오는지 묻지 않는다. 봄비가 내리고 나서야 이미 천지가 연초록으로 물들고 있음을 알게 할 뿐. 그가 화랑을 열고 걸어온 시간들이 하나하나 모여서 40년을 이루었다. 그 길이 돌이라면 꽃지고 피는 소리만으로도 가루가 되게 하고 쇠라 해도 녹아버렸을 정도로 사연 많은 날들이다. 그 시절 사이에 그가 만난 화가들이 흐르는 강물이라면 그는 강둑이다. 봄비에 젖은 강둑이다. 강물이 떠나가면 강둑은 결코 혼자 남아 있지 않는다.
강물이 바다에 이를 때까지 따라간다. 바다에 이르러 큰 소리를 내며 강물이 작별 인사를 할 때 비로소 강둑은 긴 마음의 언덕으로 혼자남아 있다. 사람의 얼굴에는 삶의 풍경들이 새겨져 있듯 그의 얼굴에는 봄비에 젖은 긴긴 마음의 강둑이 새겨져 있다. 1995년 낙향해서 그를 만난 뒤 문득문득 밤이슬 내리는 줄 모르고 불렀던 노래와 수많은 사연들. 논설위원을 그만둔 뒤 오래 타국에 떠나 있었던 동안에는 따로따로 술병을 앞에 놓고 노래 한곡씩 주고 받았던 때도 많았다. 40년, 그의 모든 순간들이 오늘 옷깃을 여민 봄비의 저 얼굴에 푸르다.
문형렬<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