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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천 작가 개인전 '은현(隱顯)'...숨김·드러냄의 긴장 속 중용·미학 본질 탐구
김봉천 작가의 화면은 '무엇을 감추고, 무엇을 드러낼 것인가'라는 질문의 연속이다. 이 물음은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한다. 그는 숨김과 드러냄의 긴장 속에서 중용의 세계와 미학의 본질을 탐구한다. 동원갤러리에서 진행 중인 그의 개인전 제목 또한 숨김과 드러남을 원천으로 하는 '은현(隱顯)'이다. 그의 철학적인 물음인 '은(隱)-현(顯)' 시리즈는 한지에 먹으로 묘사한 풍경과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표현한 기하학적 문양이라는 두 가지 화풍으로 전개된다. 그러나 서로 다른 화면 속의 개념적인 기반은 동일하다. 동서양의 물성들을 실험대 위에 올려놓고 그가 탐구하는 주제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관계성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이 관계성은 흡수와 차단, 뜯어냄과 부착의 반복을 통해 맞물리는데, 여기에는 중요한 개념 하나가 더 등장한다. 바로 균형이다. 그는 보이는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세계가 공존한다고 믿는다. 이때 필요한 개념이 균형이다. 그는 이런 상태를 "중용"에 빗댔다.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세계의 공존을 인정했어요. 해와 달이 있어 아름다운 꽃이 핀다는 시각이었죠. 그런 균형적인 인식을 제 작업에서 '숨김'과 '드러남'의 미학으로 가시화 했어요."
한지 작업은 나뭇잎이나 동전 위에 종이를 덮고 문지르면 표면의 무늬를 종이에 찍은 프로타주(Frottage) 기법으로 진행된다. 작업은 네 단계로 진행된다. 첫째는 원하는 형태를 종이에 그려서 자른 후에 풀로 붙이는 과정이다. 이후 초칠을 한 후 장지로 덮어서 열을 가한다. 이때 열에 의해 장지에는 형태가 찍힌다. 세 번째 과정에서 장지 표면에 먹을 칠한다. 먹을 도포하기 전의 표면은 초를 칠한 형태와 그 나머지 즉 배경이 공존하는데, 먹을 도포하면 초를 칠한 부분은 먹을 흡수하지 않게 된다. 그 부분들의 한지를 뜯어내면 흰색 한지가 드러나게 되는데, 그것이 그가 애초에 종이에 그린 형태다. 한지를 부분적으로 뜯어내는 행위는 그에게 단순한 파괴가 아닌, 화면 안에 숨어 있던 형상을 역으로 드러내는 신호다. "장지는 한지를 3겹 내지는 4겹으로 겹쳐서 만들기 때문에 먹을 칠한 후 한 겹의 한지를 뜯어내면 그 아래 한지가 드러나게 되는 구조입니다. 한지의 흡수성을 초를 칠해 원천차단하며 한지라는 재료의 성질을 전복하는 것이죠." 먹과 한지로 표현한 '은(隱)-현(顯)' 시리즈는 2013년부터 시작됐다. 물에 비친 풍경이나 여름에 햇빛을 막기 위해 치는 발을 통해 들어오는 대숲의 잔잔한 일렁임을 프로타주(Frottage) 기법으로 표현한 시리즈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람의 얼굴 형상을 새롭게 추가했다.
캔버스와 아크릴 물감을 재료로 하는 '은(隱)-현(顯)' 시리즈는 물감을 쌓아올리는 서양미술의 기법을 채택하고, 색채도 다채롭게 사용한다. 원하는 형태를 캔버스에 시트지로 붙인 후에 캔버스 표면 전체에 물감을 칠한다. 그런 후에 시트지를 뜯어내면 숨겨졌던 형태가 드러난다. 하지만 한지와 먹 작업처럼 숨김과 드러남의 미학은 그대로 적용된다. 시트지 작업은 수차례 중첩되는데, 그에게 중첩은 단순한 색과 형태의 축적에 머물지 않는다. 보다 높은 차원에 대한 열망이다. 그것은 곧 시간의 층위이며, 기억의 중첩이다. 그는 아래층에 숨겨진 이미지와 위층의 우연적 흔적들은 서로를 끌어들이며 긴장감을 유발한다. 이는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은 요소다. 관람객은 그가 만든 층과 층 사이에서 개인적인 서사를 만들게 된다. "감상자의 감상 행도 창작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그들이 작품을 각자의 시선으로 해석하기를 바랍니다."
한지에 먹,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이라는 각기 다른 물성과 기법으로 각각의 화풍을 정립하지만, 공통분모는 적지 않다. 먼저 작업 속 개념이 '숨김과 드러남', 즉 은현의 상태를 고수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두 화풍 모두 치밀한 밑그림 아래 작업한다는 것이다.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레이터 등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원하는 형태를 미리 시뮬레이션 한 후에 프린팅하고, 프린트된 밑그림을 기반으로 작업이 진행됩니다." 선(線)적인 요소의 활용도 두 화풍 모두에 적용된다. 그는 가로나 세로, 직선이나 곡선의 조율 속에서 화면 속의 형태를 잡아간다. "선과 선의 대치나 선의 중첩으로 형태를 갖춰 갑니다." 우연성의 수용도 빠트릴 수 없다. 밑그림을 그릴 때나 물감을 칠하거나 분사할 때 찾아오는 우연적인 요소들을 애써 걷어내지 않는다. "우연성은 화면의 서사를 풍성하게 하는 자양분이자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여는 단초로 작용합니다."
김봉천의 작업은 동서양의 경계를 허무는 실천적 제스처다. 한국화를 전공하고 동서양 미술을 서로 소통하는 그의 선택에는 단순한 물질과 기술적 혼종 이상의 의미가 부여된다. 동서양 의 물성에 의한 표면의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전통의 기반 위에서 현대적 물성을 수용하며 새로운 정체성 형성의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 한지를 뜯고, 시트지를 떼어내는 행위는 신체적 고단함을 수반한다. 그러나 그 행위의 반복 속에서 작가는 놀이의 쾌감을 경험한다. 형태가 하나씩 드러날 때의 만족감은 그를 작업을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젊은 날의 고통스러움은 삶의 숙련으로 변했고, 지금의 작업에서 그는 고통을 어떻게 놀이로 전환할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은현(隱顯)의 개념이 작동하는 그의 화면은 단순환 회화적 재현을 넘어선다. 초를 칠하거나 시트지를 붙인 후 뜯어내는 기법을 통해 구축된 다층적 레이어는 추상이자 초현실이며, 그것은 즉각적인 인지를 유예시킨다. 물질과 사유가 맞물리며 초현실의 화면은 '생각의 장'으로 격상된다. 한지와 먹·캔버스와 아크릴 물감이라는 재료와 숨김·드러냄, 레이어, 우연성이라는 기법이 만들어낸 시각적 조건들은 관객의 인지적·감정적 반응을 유도하고, 그 반응이 곧 해석적 사유로 귀결되는 구조로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저의 회화는 재료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이 관객의 해석 속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나는 열린 구조의 예술입니다." 전시는 29일까지.
황인옥기자



